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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halcondios
작성일 2007-08-26 오후 8:43:00 조회수 3886
제목 도미니카의 대중음악 - 메렝게 2 구분
내용 Part II: Merengue de Orquesta



By Sydney Hutchinson



Orquesta or big band merengue became the merengue of choice for the urban Dominican middle and upper classes in the twentieth century. Although merengue had been played in upper class salons as early as the 1850s, moralists like then-president Ulises Espaillat succeeded in banning the dance from such locations only two decades later, causing the merengue to effectively die out in the cities. Still, it was kept alive by rural musicians such as accordionist/composer Nico Lora, and it began to reappear in towns of the Cibao during the 1910s.



오케스트라 또는 빅밴드형식의 메렝게는 20세기 들어서 도시에 사는 중상류층을 위해 탄생한 메렝게였다. 비록 1850년부터 일찍이 상류층 사교모임에서 연주되었기도 했지만, Ulises Espaillat 대통령같은 도덕주의자들은 도시에서 효과적으로 메렝게를 없애기 위해 20년동안 그런 장소에서의 춤을 금했다. 하지만 여전히 메렝게는 어코니언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니꼬 로라같은 시골 뮤지션들에 의해 살아 남았다. 그리고 그것은 1910년쯤에 시바오의 번화가에서 다시 나타났다.



During that decade, several composers, including Julio Alberto Hernandez, Juan Espinola of La Vega and Juan Francisco Garcia of Santiago, tried to resuscitate the dance by creating orchestrated, written scores based on folk merengue melodies. One of these was Garcia's 1918 work titled "Ecos del Cibao." Composer Luis Alberti later reported that such pieces, especially the famous tune known as the Juangomero, were frequently played at the end of an evening's program that otherwise featured import!ed styles like waltzes, mazurkas, polkas, danzas, danzones, and one- and two-steps.



그후 10년동안, Julio Alberto Hernandez, Juan Espinola of La Vega and Juan Francisco Garcia of Santiago를 포함하는 여러 작곡가들은 포크 메렝게 멜로디를 기반으로 짜여진 악보에 의해 연주되는 오케스트라로 그 춤을 부활시켰다. 이런 움직임들 중 하나가 "Ecos del Cibao."라는 타이틀이 붙는 Garcia의 1918년대의 작품이다. 나중 작곡가 Luis Alberti가 그런 형식들로 여러 곡들을 내놓았다. 특히 Juangomero로 알려진 그런 장단이 waltzes, mazurkas, polkas, danzas, danzones, and one- and two-steps같은 특색있는 이국 스타일의 저녁 프로그램끝에 멋들어지게 연주되었다.



While these early efforts in orchestrated merengue generally succeeded only in scandalizing their audiences, the political changes that occurred in the Dominican Republic over the next few years made a resurgence of the merengue possible. The resented North American invasion of 1916 seems to have made the general public more disposed to support autochthonous rhythms over import!ed ones, though the raucous rural accordion sound was still unacceptable to high-society tastes. Nevertheless, when Rafael Leonidas Trujillo took power in 1930, he imposed the merengue upon all levels of society, some say as a form of punishment for the elites that had previously refused to accept him. The soon-to-be dictator must also have realized the symbolic power of the rural folk music and its potential for creating support among the masses, since he took accordionists with him around the Republic during his campaign tours from the very beginning.



오케스트라 형식의 메렝게의 이러한 초기 노력이 대개 그들의 청중을 열광시키는데 시키는데 성공하는 동안, 다음 몇년 동안 메렝게의 부흥을 가능케 만든 정치적 변화가 도미니카내에서 일어났다. 1916년에 일어난 괘씸한 미국침공의 영향으로 공공 정책이 토착 리듬의 음악들을 지원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의 메렝게의 시끄러운 어코디언 사운드는 여전히 상류층에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렇지만 독재자 라파엘 레오니다스 뜨루히요는 1930년대즈음 강력한 힘을 가졌었다. 그는 강제적으로 메렝게를 전 계층에 권했다. 누군가는 이런 그의 행동을 그를 이전부터 거부했던 상류층들를 향해 만들어진 처벌의 형태라고 말했다. 독재자로 군림하게 된 그는 시골의 포크 음악을 힘의 상징으로 두고 대중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잠재력을 키웠다. 그는 집권 초기부터 어코디언니스트를 데려와 그의 캠페인 투어동안 도미니카 전국을 순회했다.


Following his election, Trujillo ordered musicians to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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